르포코리아2026-09-09 19:50
평등을 만들자는 주의는 대저 옳으니 — 1923년 「공산당의 당부당」을 원문으로 읽는다
영상에서 이 글의 다섯 항목에 쓴 시간은 3분 남짓이다. 항목당 원문 한두 문장에 해설 한 줄. 시간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화면은 문장이 겹쳐 쌓이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나레이션이 긴 문장을 두 개 이어 읽는 순간 시청자는 앞 문장을 놓치고, 놓친 사람은 되감지 않고 나간다. 그래서 골라낸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잘랐다.
잘라낸 자리가 아까워서 이 글을 쓴다.
1923년 3월 1일자 『태평양잡지』에 실린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이다. 하와이대학교 마노아 한국학센터가 디지털화해 공개한 그해 3월호 스캔본(Vol. V No. 1)의 인쇄 페이지 16~18에 실려 있다. 전문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는다. 대목마다 필요한 만큼만 끊어 온다.
제목이 곧 방법이다. 당부당. 당(當)한 것과 부당(不當)한 것.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나눈다는 뜻이다. 찬성도 반대도 아니다. 글쓴이는 첫머리에서 그 설계를 그대로 밝혀 놓았다.
그 주의가 오늘 인류사회에 합당한 것도 있고 합당치 않은 것도 있으므로 이 두 가지를 비교하여 이 글의 제목을 "당부당"이라 하였나니
그리고 인정할 것부터 꺼낸다. 순서가 중요하다. 반대할 것을 먼저 늘어놓고 마지막에 한 줄쯤 인심 쓰듯 붙이는 방식이 아니다. 글의 앞쪽 절반이 통째로 인정이다.
그가 꺼내는 것은 조선의 반상(班常)이다. 양반의 피를 타고나면 천치라도 윗사람이 되고, 잘못 타고나면 영웅준걸의 재질을 가져도 하천한 대우를 면치 못하던 시대. 사람을 대대로 사고팔던 노예제. 그것이 프랑스 혁명과 미국 공화정 이후 법으로 무너진 것을 서양 문명이 이룬 사상의 발전이라고 적는다. 여기까지는 흔한 계몽 서술이다. 그런데 그 다음 문장에서 방향이 꺾인다.
반상의 명칭은 없이 하였으나 반상의 등분은 여전히 있어서 고금에 다를 것이 별로 없도다.
신분제는 법에서 지웠는데 그 자리에 빈부가 들어앉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예제 이야기를 한 번 더 끌어온다.
월급이라 공전이라 하는 보수 명의로 사람을 사다가 노예같이 부리기는 일반이라.
1923년에 하와이의 한인 잡지에 실린 문장이다. 이 대목만 떼어 놓고 출처를 가리면 누가 썼는지 맞히기 어렵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매듭짓는다.
평등을 만들자는 주의는 대저 옳으니 이는 적당한 것이라 하겠고
그러니까 이승만이 평등을 반대한 일은 없다. 그가 다툰 것은 평등을 무엇으로 이룰 것인가였다. 이 구분을 흘려 놓으면 뒤에 오는 다섯 항목이 통째로 다른 글이 된다. 반대하는 자의 트집이 되거나, 반대로 예언자의 신탁이 된다. 둘 다 이 글이 아니다.
부당한 것으로 그가 든 항목은 다섯이다.
첫째, 재산을 모두 합해 고르게 나누는 방식이다.
게으른 사람들이 농사를 아니하든지 일을 아니하든지 하여 토지를 다 버리게 되면 어찌하겠느뇨. 부지런한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하여 게으른 가난뱅이를 먹여야 할 것이요
노력과 결과를 끊어 놓으면 노력할 이유도 함께 끊긴다는 지적이다. 짧고, 이론이 없고, 농사짓는 사람의 눈으로 적혀 있다.
둘째, 자본가를 없애는 방식이다.
재정가들의 경쟁이 없어지면 상업과 공업이 발달되기 어려우리니, 사람의 지혜가 막히고 모든 기기 미묘한 기계와 연장이 다 스스로 폐기되어 (…) 물질적 개명이 중지될지라.
여기서 영상에 넣지 못한 문장이 하나 있다. 그는 반박에서 멈추지 않고 곧바로 대안을 적어 둔다.
자본을 폐기하기는 어려우리니 새 법률로 제정하여 노동과 평등 세력을 가지게 하는 것이 나을 터이며
자본을 없애는 대신, 노동이 자본과 맞먹는 힘을 갖도록 법으로 만들라는 얘기다. 1923년에 하와이에서 쓴 문장이다. 이 한 줄 때문에 이 글은 자본가 옹호문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이 한 줄이 화면에서는 늘 잘린다 — 반박은 짧아서 자막에 얹히고, 대안은 길어서 안 얹히기 때문이다. 영상이 구조적으로 놓치는 것이 대개 이런 문장이다.
셋째, 지식계급을 없애는 방식이다. 이 항목은 한 문장 안에 인정과 반박이 같이 들어 있다.
모든 인민의 보통 상식 정도를 높여서 지금의 학식으로 양반노릇하는 사람들과 비등하게 되자 하는 것은 가하거니와, 지식 계급을 없이 하자 함은 불가하며
올려서 맞추는 것은 옳고 깎아서 맞추는 것은 그르다. 앞 절을 지우고 뒤 절만 인용하면 그는 엘리트주의자가 되고, 뒤 절을 지우고 앞 절만 인용하면 평등주의자가 된다. 원문에는 둘이 한 문장으로 붙어 있다.
넷째, 종교 조직을 없애는 방식이다. 이 항목도 그가 종교를 옹호하면서 시작하지 않는다.
자고로 종교단체가 공고히 조직되어 그 안에 인류 계급도 있고, 토지 소유권도 많으며, 이 속에서 인민 압제와 학대를 많이 하였나니
종교가 저지른 일을 먼저 적고, 그럼에도 조직 자체를 없애면 인류덕의(人類德義)에 손해가 크다고 이어 붙인다. 신앙을 변호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묶어 두는 규범의 문제로 본 것이다. 그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읽으면 이 항목이 가장 흐릿해 보이는데, 원문 순서대로 읽으면 오히려 가장 앞뒤가 맞는다.
다섯째, 정부도 군대도 국가도 없애자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 글에서 가장 단단한 대목이다.
지금 공산당을 주장한다는 러시아로만 보아도 정부와 인도자와 군사가 없이는 부지할 수 없는 사정을 자기들도 다 아는 바라.
국가를 없애자고 말하는 쪽이 정작 자기 국가를 세우고 군대를 기르고 있으며, 그 사실을 그들 자신이 안다는 것이다. 이념을 겨냥한 문장이 아니라 그 이념을 말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겨냥한 문장이다. 논파하기 어려운 종류의 지적은 대개 이렇게 생겼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서 이 글의 정체가 드러난다.
우리 한인은 일심단결로 국가를 먼저 회복하여 세계에 당당한 자유국을 만들어 놓고 군사를 길러서 우리 적국의 군함이 부산 항구에 그림자도 보이지 못하게 만든 후에야, 국가주의를 없이할 문제라도 생각하지…
우리 한족에게 제일 급하고 제일 긴하고 제일 큰 것은 광복사업이라, 공산주의가 이 일을 도울 수 있으면 다 공산당 되기를 지체치 않으려니와 만일 이 일이 방해될 것 같으면 우리는 결코 찬성할 수 없노라.
이 글은 공산주의 이론을 논파하려고 쓴 글이 아니다.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이 새로 들어온 이념을 만났을 때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 그 기준을 세우려고 쓴 글이다. 도움이 되면 다 공산당이 되겠다는 문장을 그가 실제로 적어 놓았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념이 먼저가 아니라 광복이 먼저이고, 이념은 그 앞에서 심사를 받는다.
정직하게 하나 적어 둔다. 이 지면 어디에도 「이승만」이라는 서명은 인쇄돼 있지 않다. 하와이대 마노아 한국학센터의 해제에 따르면 1923년 3월호의 편집인은 김영우였다. 이 글을 이승만의 글로 보는 근거는 지면의 서명이 아니라 후대의 서지다.
그 서지를 한 겹 더 들춰 보면 이렇다. 이 글을 이승만 저작으로 분류한 학술 문헌은 위스콘신대 박사논문과 윌슨센터 보고서 두 건인데, 둘 다 데이비드 필즈(David P. Fields) 한 사람이 썼다. 뒤의 것은 앞의 것을 발전시킨 글이다. 문헌이 둘이니 교차 확인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 계열이다. 그리고 두 문헌 모두 류석춘 교수가 이 글을 알려 주고 현대 한글 표기로 옮겨 주었다고 감사 표기에 밝혀 두었다. 원 지면의 서명을 직접 확인한 근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호수 표기도 갈린다. 원본 표지는 Vol. V No. 1인데 여러 2차 자료는 「제31호」로 적는다. 왜 갈리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누계 호수일 것이라는 짐작은 해 볼 수 있지만, 짐작을 적어 두면 다음 사람이 그것을 근거로 쓴다. 그래서 적지 않는다.
이걸 굳이 적는 이유가 있다. 이 채널에서 앞서 그람시의 유명한 문장이 원문과 다르게 굴러다닌다는 글을 썼다. 이름이 붙는 순간 문장이 검증에서 빠져나간다는 이야기였다. 그 일은 방향을 가리지 않는다. 좋아하는 인물에게 하면 우상화가 되고 싫어하는 인물에게 하면 매도가 되는데, 하는 짓은 똑같다. 확인하지 않은 것을 확인한 것처럼 쓰는 것이다. 근거가 둘인 줄 알았다가 세어 보니 하나이더라는 것도, 세어 보기 전에는 둘로 보인다.
당부당이라는 방법 자체를 마지막으로 짚고 싶다.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나누려면 먼저 상대에게 옳은 구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 인정이 진영 안에서는 배신으로 읽힌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방법을 쓰지 않는다. 진영을 먼저 고르고, 고른 다음에 근거를 모은다. 근거가 판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판단이 근거를 부른다.
1923년 하와이에서, 그는 인정부터 하고 시작했다.
* 인용은 이승만기념관이 올린 현대어 전재본을 따랐다. 옛 표기 그대로가 아니라는 뜻이다. 마노아 스캔 원본과는 도입부만 육안 대조했고 전 구간 대조는 아직 못 했으니, 글자 단위로 따질 자리에서는 스캔본을 직접 보시라. 인용문 두 곳에서 전재본의 편집자 보충 풀이(「등분(차별)」의 괄호, 「재정가[기업인]」의 대괄호)를 덜어 냈고, 한 곳은 같은 방향의 중간 논거를 말줄임으로 끊었다. 발췌만 쓴 것도 인심이 후해서가 아니다. 1923년 발행물이라 미국에서는 2019년부터 퍼블릭도메인인데, 한국에서는 이 글이 이승만 저작으로 인정될 경우 사후 70년 원칙에 따라 2035년 말까지 보호될 수 있다. 그런데 그 인정 여부가 바로 위 문단에서 아직 미결이다. 같은 글이 태평양을 건너면 공공재가 되고, 돌아오면 저자가 누구인지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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