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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하와이에서 쓴 공산주의 경고 — 「공산당의 당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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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소련이 무너집니다.

전 세계가 "공산주의의 종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붕괴의 뿌리에 있던 위험을, 68년 전에 이미 글로 짚어낸 사람이 있습니다.

장소는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아닙니다.

하와이의 작은 한인 잡지사입니다.

제1장

0:18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납니다.

2월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고, 그해 10월 레닌의 볼셰비키가 임시정부를 무너뜨리고 소비에트 권력을 세웁니다.

계급 없는 사회로 가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 소식은 곧바로 전 세계 지식인들을 흔들어놓습니다.

당시 서구의 저명한 지식인들 상당수가 이 실험을 "인류의 미래"라고 불렀습니다.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신분제와 빈부격차에 신물이 나 있던 사람들에게, "다 함께 평등하게 산다"는 구호는 거의 종교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그 열기 한복판에서, 다른 목소리를 낸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우리가 흔히 "냉전의 설계자"나 "친미 정치인"으로만 기억하는 이승만입니다.

제2장

1:00

이승만은 1913년부터 하와이에서 『태평양잡지(The Korean Pacific Magazine)』를 직접 만들고 있었습니다.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이끌다 1921년 하와이로 돌아온 뒤에도, 그가 붙잡은 무기는 총이 아니라 활자였습니다.

1923년 3월 1일자, 다섯 번째 해 첫 호.

그리고 그 지면에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립니다.

제목부터가 도발적입니다.

"당부당" —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공산주의 전체를 찬양도, 전면 부정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1923-03-01

"그 주의가 오늘 인류사회에 합당한 것도 있고 합당치 않은 것도 있으므로, 이 두 가지를 비교하여 이 글의 제목을 '당부당'이라 하였나니…"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지면 어디에도 "이승만"이라는 서명은 인쇄돼 있지 않습니다.

다만 위스콘신대 박사논문을 비롯한 여러 학술 연구가 이 글을 이승만의 글로 분류합니다 — 그가 이 잡지를 창간해 끌고 온 사람이고, 매호 여러 편을 서명 없이 싣던 필자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상할 게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1923년은 소련 체제에 대한 국제적 평가가 아직 크게 엇갈리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장단점을 나눠서 보자"고 말하는 건, 지지도 반대도 아니라 — 분석을 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제3장

2:13

이승만은 공산당의 취지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먼저 조선의 오랜 신분제 이야기부터 꺼냅니다.

양반과 상놈으로 나뉘어 핏줄로 신분이 갈리던 시대, 그리고 사람을 사고팔던 노예 제도.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1923-03-01

"부자는 일 아니하고 가난한 자의 노동으로 먹고살며… 월급과 삯전을 점점 깎아서 가난한 자는 호구지계를 잘 못하고 늙어 죽도록 땀 흘리며 노력하여… 이 어찌 노예 생활과 별로 다르다 하리오."

신분제는 법으로 없어졌지만, 그 자리를 빈부 격차가 대신 차지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1923-03-01

"평등을 만들자는 주의는 대저 옳으니, 이는 적당한 것이라 하겠고…"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게 있습니다.

이승만은 반공주의자이기 이전에, 평등 자체를 반대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가 문제 삼은 건 "평등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 그 방법론이었습니다.

제4장

3:06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이 글의 진짜 핵심입니다.

이승만은 공산당의 방법론을 다섯 가지로 쪼개서 조목조목 반박합니다.

첫째, 재산을 강제로 나누면 어떻게 되는가.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1923-03-01

"게으른 사람들이 농사를 아니하든지 일을 아니하든지 하여 토지를 다 버리게 되면 어찌하겠느뇨…"

노력과 결과가 분리되면, 노력할 이유도 함께 사라진다는 지적입니다.

둘째, 자본가를 없애면 어떻게 되는가.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1923-03-01

"재정가들의 경쟁이 없어지면 상업과 공업이 발달되기 어려우리니… 물질적 개명이 중지될지라."

미워할 대상을 없애는 것과, 그 대상이 하던 일을 대신할 사람을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겁니다.

셋째, 지식계급을 없애면 어떻게 되는가.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1923-03-01

"지식 계급을 없이 하자 함은 불가하며…"

지식을 가진 자를 적으로 돌리는 순간, 사회 전체의 수준이 함께 무너진다는 경고입니다.

넷째, 종교를 없애면 어떻게 되는가.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1923-03-01

"교회 조직을 없이 하는 날은 인류덕의상 손해가 다대할 것이며…"

신앙 자체가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붙잡아주는 규범의 문제로 본 겁니다.

그리고 다섯째, 가장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정부와 군사, 국가를 없애면 어떻게 되는가.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1923-03-01

"지금 공산당을 주장한다는 러시아로만 보아도, 정부와 인도자와 군사가 없이는 부지할 수 없는 사정을 자기들도 다 아는 바라…"

이 다섯째 항목이 사실상 이 글 전체의 결론입니다.

"국가를 없애고 한 나라만 믿으라"는 방식이 결국 어떤 자기모순에 부딪히는지, 그는 이미 짚어내고 있었습니다.

이승만이 이 글을 쓴 지 68년 뒤, 소련은 실제로 무너졌습니다.

그가 붕괴 시점까지 예언한 건 아니지만, 그가 짚어낸 근본적인 결함은 68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은 이 글을, 자기 나라 이야기로 끝맺습니다.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1923-03-01

"우리 한족에게 제일 급하고 제일 긴하고 제일 큰 것은 광복사업이라, 공산주의가 이 일을 도울 수 있으면 다 공산당 되기를 지체치 않으려니와, 만일 이 일이 방해될 것 같으면 우리는 결코 찬성할 수 없노라."

이념보다 독립이 먼저라는 겁니다.

그에게 공산주의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아니라, 조선의 독립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로 저울질할 대상이었습니다.

제5장

5:13

이 채널에서 앞서 다룬 『Japan Inside Out』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글에서 이승만은 일본의 신정전체주의(神政全體主義) — 천황을 신으로 떠받드는 체제가 결국 태평양전쟁으로 폭주할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3개월 22일 뒤, 진주만이 터졌습니다.

「공산당의 당부당」은 그 안목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일본이든 소련이든, 이승만이 실제로 경계한 건 "이념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개인의 판단을 지워버리고 하나의 체제·하나의 믿음에 전부를 걸게 만드는 전체주의적 구조 — 그게 그의 진짜 표적이었습니다.

신정전체주의를 꿰뚫어 본 눈과, 공산 전체주의를 꿰뚫어 본 눈은 같은 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이 옳았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은, 그로부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 글이 나온 지 8년 뒤인 1931년, 세계적인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소련을 방문해 스탈린을 만납니다.

그리고 2년 뒤, 소련을 다녀온 다른 방문자 스무 명과 함께 이런 공개서한에 서명합니다.

소련의 사회 상황에 대하여1933-03-02

"우리는, 우리 나라들에서는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언론이 '뉴스 가치가 없다'며 무시하는 그런 경제적 노예제도와 궁핍과 실업과 개선에 대한 냉소적 절망의 증거를, 소련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음을 기록하고자 한다."

이승만이 활자로 경고했던 바로 그 함정에, 서구 최고의 지식인 중 한 명이 직접 걸어 들어간 겁니다.

스탈린은 이런 방식으로 외국 지식인들을 초청해 대접하며 이미지를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승만은 하와이의 잡지사에 앉아서, 그 함정을 미리 글로 그려낸 셈입니다.

당대 지식인 대다수가 "혁명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환상에 취해 있을 때, 그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오랫동안 "시대에 뒤떨어진 반공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68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읽으면, 이 글은 뒤떨어진 게 아니라 너무 일찍 도착한 경고였습니다.

에필로그

6:58

1923년 하와이의 작은 잡지에 실렸던 한 편의 글.

「공산당의 당부당」.

다음 편에서는, 이승만이 이 안목을 실제 정치의 선택으로 옮기는 과정을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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